나쁜 남자에게 빠지는 여자의 심리

 

오늘 나는 쏟아지는 잠을 흔들어 떨쳐 버리고, 입술이 섹시한 후배 J를 만났다. 엑셀과 파워포인트 수업을 듣고 왔다는 그녀는 기숙사 침대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뛰쳐나온 나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나쁜 놈과의 나쁜 관계에서 오는 숙취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걔가 별로고 나쁜 애라는 거 알거든요? 근데 자꾸만 이렇게 생각나고, 연락하고 싶어 미치겠어요.”

우리는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빴다는 수 백 가지의 증거가 확연히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음에도 그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소소한 증거 하나만을 두 손으로 간직하며, 그에 대한 다른 모든 반증 사례를 무시해 버린다. (혹은, 무시하고 싶어 한다.)

  “나도 내가 잘못 생각한다는 걸 알긴 알아요. 근데도 왜 자꾸 미련을 가지게 됐을까요?

언니 진짜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게 맞나 봐요.”

아. 나는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주변에 간간히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나도 많아서 쉽게 부정을 할 수도 없었다. 말하기조차 치사할 만큼 사소하고, 미묘하기에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남자 애인의 나쁜 특성은 많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여자 친구가 하는 불평, 불만은 애정 표현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성에게 ‘나쁜 남자’, ‘해로운 남자’ 중에는 정도가 너무 심각해서 제 3자의 중재가 있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부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이다. 이런 남자를 남편이나 애인이라고 의지하는 여성들은 객관적인 눈으로 보든, 주관적이 눈으로 보든 정도가 심해도 한참 심한 ‘나쁜 남자’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런 나쁜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나쁜 관계 속에 그들을 파묻도록 발목을 잡는 심리적인 기제에 주목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가진 심리적인 기제는 비단 가정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뿐만 아니라 나와 J를 비롯한 다른 모든 여성들이 가졌을 지도, 가지고 있을 지도 혹은 앞으로 가지게 될 수도 있는, 미묘하지만 무시무시한 것이기에 나는 우리 모두가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 맨 처음으로 남편으로부터 얻어맞은 여성이 있다고 하자. 어쩌면 이 여성이 맞을 짓을 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성이 잠시 정신이 나가 손찌검을 했다고 치자. 그럴 때 그 여성은 놀라움과 경악의 감정과 함께 억울함과 수치심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놀라움과 경악은 그렇다 치고, 억울함과 수치심의 감정을 더 들여다보자.

 

이 여성은 자신이 이 감정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면 할수록 자신을 때리는 남편에게 더 집착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때에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옆에 있는 제 3자가 주는 객관적인 피드백(즉, 그 놈은 나쁜 놈이다)보다도 자신에게 억울함과 수치심을 씌워준 남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그런 엄청난 감정을 자신에게 씌워주었으므로 그 감정을 걷어 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 역시 그 남편인 것이다. 혹은, 그래보인다.

 

더군다나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대부분의 남편들은 그 다음 날이 되면 태도를 180도 바꿔서 꽃을 사 들고 온다거나 더 없이 부드러운 공처가가 되기 때문에 그 전날 얻어맞고 어 벙벙한 상태에 있던 여성은 더욱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는 어제의 사건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

 

이렇게 부드러운 태도로 어제의 일을 진심으로 속죄하는 것 같은 남편이 가엽기도 하고, 이렇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보듬어 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남편이 천성을 순한 사람인 데 불운한 환경이나, 적절치 못한 상황이 그를 ‘아주 잠시’ 나쁜 남자로 만들었다고 자위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어쩌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한다.

 

이런 일이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계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이 관계 안에 있던 여성은 점점 현실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은 환상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해주기 위해 남편에게 수갑을 채우는 경찰관에게 오히려 대들며 야속하다 한다.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에 비해 연락도 안하고, 변명만 늘어놓고, 바람을 피우는 비교적 정도가 덜 한 우리 주변의 나쁜 남자들과, 그들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들 때문에 기분 나빠하고, 밤잠을 설치며, 좋은 청춘을 한숨과 초조, 불면으로 보내는 여자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쩐지 이 여성들도 비슷한 심리 구조를 반복하는 것만 같다. 이 남자가 나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는 다른 모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반증 사례들이 확연히 드러남에도 이 남자에게 미련을 가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이런 나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고,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남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상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모든 복잡 미묘한 감정 - 화남, 미움, 답답함, 억울함, 자존심 상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립고 애타게 보고 싶음-을 씌워 놓은 장본인 이므로 우리는 바로 그 사람이 우리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기를 열렬히 원하는 것이다(그 사람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실 그렇다).

 

이것은 비단 나쁜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지쳐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나쁜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지쳐가면서도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많은 남성들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우리가 이런 복잡한 감정 투자를 그 나쁜 대상에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곳에서 더 헤어 나오지 못한 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식에게 정신적, 시간적, 물질적, 육체적, 감정적 투자를 더 많이 한 우리의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지만, 자식이 우리가 그 사랑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위적인 노력을 덧붙여도

그 사랑의 크기와 무게를 절대 쫓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부모님이 우리에게 투자한 만큼 부모님께 투자하지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말 그래도 우리는 투자한 만큼(뿌린 만큼) 거두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는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았을 때 내가 J에게(혹은 과거나 미래의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빨리 거기에서 빠져 나와’ 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정은 더욱더 복잡해질 것이고, 그 남자에게 되돌려 받고 싶은 감정의 크기는 더욱더 커질 것이고, 많은 생각들에 사로 잡혀 있느라 자신이 가진 삶의 다른 영역 또한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J의 말을 줄기차게 반박했다. 그녀는 ‘잊자’ 라는 제목을 가진 전화기를 손에서 떼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언니. 그 애가 잘해줬던 게 자꾸 생각나요. 지금 얘도 하던 운동을 완전히 그만두고 군대 문제도 걸려 있어서, 자기가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고민하고 있을 텐데 그런 고민을 내가 다 풀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다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오만’이 아닐까? 사실 내 마음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데, 나 혼자 노력한다고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 이끌고 보듬어가기가 어떻게 쉽니?”

  “그래도.”

  한참 동안 한숨을 쉬다가, 웃다가, 울다가 목소리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거의 무아지경으로 자신의 얘기를 쏟아내던 J는 문득 정신을 차린 듯 시계를 보았다. 도서실에 가서 숙제를 해야 하는 데 도서실 문 닫을 시간이 두 시간여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J를 보내고 내 방에 들어오면서 나는 과연 오늘 내가 한 말이 얼마나 그 애의 귀 속에 들어갔을 가를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마 순간순간 그 애의 귀를 두드린 나의 말들 중 단 한 마디도 그 애의 마음속으로 까지는 투과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 그 애의 세계는 이성적인 판단과 평가가 침투할 수 없는, 너무도 견고하고, 단단한 환상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애초에 여자들이 그런 환상을 안고 나쁜 남자와의 나쁜 관계에 왜 집착하게 되는 가를 살펴보면 분명 그 남자와의 관계가 그녀들의 심리에 주는 이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의 행동이 희생적이라고 하든, 피학적이라고 하든, 의존적이라고 하든, 바보 같다고 하든, 우리는 우리에게 심리적인 이득을 주는 행위는 절대 안하게 되어있다. 분명, 얻는 게 있으니가 우리는 나쁜 관계에 매달리게 되는 거다.

 

아마도 그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곳을 채우고 메우고,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 사람을 돌보는 역할을 주로 하면서 본인의 존재와 의미를 인식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행위는 아픈 부모님을 돌보는 것과 같이 극단적일 수도 있고, 남동생과 오빠를 보조하거나 남자친구들을 보조하는 것처럼 경미한 것일 수도 있다.

 

사회가 여자들에게 채우도록 은근히 요구하는 수많은 돌봄의 역할들은 그녀들로 하여금 데이트 상대를 선택할 때에도 본인이 돌봄을 받고 사랑을 받기보다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 즉 내가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은,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건강한 패턴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녀들의 흥미를 끌지는 못하는 거다. 착하고 바른 사람은 그래서 그녀들에게 지루함을 준다.

 

그녀들은 지루함과 안정감보다는 흥분과 초조함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녀의 데이트 상대가 그녀의 역할과 노력을 당연시해도, 절대로 요구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상대가 아무리 나빠도, 상대가 나의 자존감을 상하게 해도, 그녀들은 상대를 이상화 하면서 상대를 환상으로 대한다.

 

마르크스는 환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현실에 대한 환상을 단념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 환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단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영화 ‘연애소설’의 한 장면 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 때문에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

 

 

우리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단념하지 않는 한, 환상과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우리 존재 전체를 거침없이 흔들어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하염없이 무기력하다.

 

난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나쁘더라도 관계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그런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절실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과 이런 저런 종류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성장해 간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난 이제 우리 모두 되도록이면 나쁜 관계보다는 좋은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는 데 어떻게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행복하지 않는 데 어떻게 사랑을 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있는 ‘나쁜 남자’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J의 그 나쁜 놈을 포함해서) 나쁜 놈들아. 제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어여쁜 여자 친구를 만나 행복하게만 살아다오. 책임을 지고,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거면서 함부로 인연을 만들고 다니지 말고……

 

글쓴이: 프시케


선안남 - 심리학 사랑에 빠지다의 저자


평생동안 마음의 치유와 위로, 그리고 변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치유적이고 실천적인 심리치료사가 되겠다는 꿈을 펼치고 있다


여자의 하루에 관한 거의 모든 심리학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아주 잠깐은 하기 싫은 것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 가운데 내면의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해서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가장 좋아하기에 상담심리사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 , 이 있고 일상에서 느끼는 많은 것을 글로 포착하며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꿈을 펼치고 있습니다